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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튼튼병원 언론보도

[건강칼럼] ‘라뽀르'(Rapport) 등록일   2019-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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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톨스토이의 대표작인 ‘안나 카레니나’는 이러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실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명문장이지요.


신경외과 척추 의사로 갖가지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를 보고 있는 저는 이 문장이 이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서로 비슷하지만 통증이 있는 사람은 모두 저마다의 사연으로 통증을 호소한다”.


저는 척추에 관련된 모든 통증을 다루고 치료하려 노력하는 의사입니다. 하지만 통증의 해결은 제가 고등학교 때 밤새 공부하고 터득하려 했던 '수학 정석'의 그것과는 다른 것임을 환자를 많이 볼수록 깨닫게 됩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외래를 방문하여 병력 조사를 할 때 저에게 통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통증의 세기는 어떠한 정도인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알리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그 통증의 원인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하고, 저에게 알리고 싶어 합니다. 즉, 저마다의 '통증의 사연’을 감정적으로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한 초창기에는 환자들의 그 사연들을 최대한 들어주려 하는 이 중요한 과정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유능한 의사란, 알고 있는 의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최대한 빨리 증상을 알아채 치료법을 설명하고 환자에게 동의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과정은 증상을 알아채는 것이 아니고 예단하는 것이고, 치료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치료법을 우겨 넣으려 했던 것입니다.


척추에 관련된 통증은 척추의 구조적 문제가 물론 시작이지만, 척추전방전위증이나 척추강협착증처럼 세월에 걸쳐 생기는 병의 경우 통증이 많은 경우에 심리적 부분에도 그 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병으로 오랜 기간 앓아온 환자의 경우 자신의 병환을 의사가 최대한 공감해주기를 원하여 최선을 다해 자신의 증상을 설명하려 합니다.


이때 묵묵히 그 이야기를 침착한 눈빛으로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의사를 통증 해결의 동반자로 인정합니다. 저는 이러한 시작으로 환자를 진료하였을 때 환자의 통증이 치료 방법과 관계없이 더욱 잘 호전되는 경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라뽀르'(Rapport)는 심리학적 용어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상호 신뢰관계를 의미합니다. 의사들 사이에는 환자와의 라뽀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격언이 있습니다. 특히 저와 같이 환자의 신체에 도구를 이용하여 변화를 주려 하는 외과의사의 경우에 이 격언은 더욱 중요한 것 같습니다.


라뽀르만 잘 형성되어도 치료의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선배들의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통증을 앓고 있어 병원에 오실 계획이 있으신 독자 여러분들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병원에 오시게 되면 그 통증의 ‘사연’을 풀어주세요. 더욱 좋은 치료 효과를 위해서 말입니다.


방우석 참튼튼병원 원장 (신경외과 전문의)